« The Third Place » 재불청년작가협회 AJAC 정기전
2023년 11월 29일 – 2024년 3월 16일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원장 이일열)은 2023년 11월 29일부터 2024년 3월 16일까지 재불 청년작가협회(이하 AJAC)의 40회 정기 전시 The Third Place를 개최한다. 정기전 참여 작가들은 매해 새로운 주제로 작업을 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재고해보는 시도를 하고 있다. 40주년을 맞는 협회의 역사와 함께 이런 노력들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 전시는 그간의 협회 활동을 돌아보며 작가 개개인이 부여하는 ‘함께(현재)’의 의미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미래)’를 모색하고자 기획되었다.
협회의 취지나 성격은 ‘프랑스에 거주하는 젊은 한국 미술인 단체’라는 명칭 자체로 제법 명확해 보인다. 이로써 한치의 이견 없이 규정하고 있는 듯하지만 자칫 그 역량을 축소해버리는 우려도 범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 개개인의 독창적인 예술적 접근과 여정을 그 안에 모두 담아 내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런 개성 넘치는 작가들을 응집하는 힘은 서로 의지하고 지지하며 ‘함께’이기에 가능한 시너지 효과일 것이다.
이들은 엄숙한 선언문에나 명시되는 미학적 또는 정치적인 문제의식으로 뭉친 것이 아니다. 엄밀히 사회화와 전문화의 필요에 의한 선택을 한 것이다. 사실 이런 단체활동은 나이나 국적, 지역적 특징이 두드러지며 주류와 동떨어진 마이너리티한 측면을 부각시킬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행보가 개인주의적 칩거식의 예술행위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공유적 마인드에 바탕을 둔 하나의 참신한 창작방식으로 평가될 수 있겠다.
라틴어 ‘cum’에서 유래한 접두사 ‘co-’는 ‘함께’라는 의미로 ‘공동저자 (coauteur)’, ‘공동거주 (cohabitation)’, ‘공동작업 (coworking)’과 같이 연결과 참여, 동시성을 뜻하는 단어를 구성한다. 근래 미술계에서는 작가나 큐레이터 집단의 뚜렷한 부상을 관찰할 수 있는데, 다양한 분야에 걸쳐 생겨나는 협업 경제에 대한 관심과도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도시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그의 저서 “The Great Good Place”에서 전개한 새로운 개념의 사회적 환경인 제3의 장소 (The Third Place)에 포괄할 수 있겠다.
저자가 제3의 장소를 집과 일터 이외의 장소로, 사회적 위계에서 자유롭고 강한 공감대와 공동체의 추구에 의해 생겨난 정겨운 장소로 정의하고 있듯이, 이번 전시는 큰 틀에서 공존이라는 문제에서 출발하였다. 다채로운 예술제안을 통해 작가들은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하여 잠재된 내면의 탐구를 다루는가 하면, 자연을 매개로 외부 세계와의 연결고리와 상호작용을 찾는다. 또한 기억과 교감의 어느 지점에서 물리적 공간을 초월한 감각과 소통의 흔적을 짚어보고, 공간적 맥락과 예술작품, 더 나아가 예술가 자신의 입지에 대해 묻는다. 이렇듯 24명의 참여 작가는 각자 나름의 해석과 상상력으로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모하는 예술공동체로서의 제3의 장소를 제안한다.
박현은 가상과 실재의 공존에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과 인간성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의 변화를 탐지한다. 반면 드미래는 기하학적 구조와 시각적 장치를 통해 오랜 시간 축적된 고유한 형태의 정체성을 팔림프세스트의 개념을 빌어 하나의 방향성을 갖는 공존의 개체로 표현한다. 임효진의 “산양인간"은 인간에게 내재된 동물성과 야생성, 즉 감각과 본능에 충실한 단면을 끄집어 내어 인간 본연의 원초적인 잠재 자아의 실현을 꾀한다. 순환하는 자연과 마주한 이송희의 정체성 탐구는 산책자에서 목격자, 목격자에서 관찰자로의 여정으로 내면을 관통하는 웅장한 자연의 광경을 선사하며 또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인도한다.
이승환의 자연은 디지털 가상세계와 현실 세계 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순환하고 재생산된 생성물로서, 또 다른 제3의 자연으로 거듭난다. 권혁이는 외부세계와의 연결고리, 소통의 매개로서의 몸을 다루는데, 돌이 다양한 문화권에서 생명과 탄생의 힘을 지닌 신앙의 대상이 되어 온 점과 자연지생관에 착안하여 남성성과 여성성이 합치된 돌모양의 조형물을 제안한다. 동일한 맥락에서 김수경은 무생물이지만 생태계의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흙으로 빚은 구를 쌓아 올린다. 각각의 구는 개인을 상징하는 작은 사회로 아슬아슬하게 포개져 기둥을 이루는데, 이는 마치 이질적인 개체들이 조화로운 공존을 지향하는 불안정한 사회의 모습을 닮았다.
줄곧 집을 소재로 작업을 해온 하유미는 상징적 공간 개념으로서의 제3의 장소를 고유함과 공동체의 가치가 상호작용하는 유기적 공간으로 그려낸다. 이와 연속선상에서 이혜원은 동일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쌓은 바벨탑을 빌어, 예술이라는 동일한 목적으로 다양한 배경과 가치관, 철학을 가진 작가들이 모여 쌓은 탑으로 이를 상징한다. 한편 윤미지는 제3의 장소를 이질감과 친밀감을 동시에 갖는 상호작용이 가능한 공간으로 보고,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동굴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박혜정에게는 ‘함께’ 힘차게 뻗어 나갈 이 공동체의 모습이 자유로운 소통과 사고가 살아 숨쉬는, 고요하지만 견고한 나무의 모습이다. 홍보라는 사진의 빛과 어둠을 통해, 검정은 고립을 흰색은 주변을 아우르며 스며드는 느낌으로 ‘함께’의 의미를 대변한다.
과거의 강렬한 경험을 재현, 재구성하는 신민서의 작업에서 제3의 장소는 기억과 교감으로 채워진 공간으로, 수없이 재생되고 변화하며 불현듯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환영과도 같다. 작가는 기억에 살과 뼈를 붙이듯 가시화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도래할 교감의 시간을 기린다. 손지영은 모래 속에 흩어진 조약돌이나 엽서, 우편함 등을 매개로 기억을 소환하여 공유하며 서로를 잇는 공감의 장을 만든다. 비슷한 맥락에서 홍성연은 불필요해진 오브제를 재활용한 작업을 통해 모두가 공유하는 강하게 각인된 시간들을 상기시킨다. 최형섭에게 매 순간 채움과 비움의 변화하는 파장 속에 있는 우리의 삶은 자연현상과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반응하는 감정과 같다. 작가는 이런 파장을 구불구불한 선을 통해 마치 세상과의 교감을 기록한 일기나 악보처럼 표현하여 공존의 가능성을 엿본다. 이와 연장선상에서 지온은 우연과 선택,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서 외부의 자극을 통해 수집한 감각들, 소통의 흔적들을 기하학적 도형과 선 등의 시각적 언어로 치환한다.
이마레는 화려한 가면과 나른하게 표현된 인물들을 통해 부조리와 슬픔, 기쁨의 감정들, 열기로 채워졌던 순간들을 표현하는데, 일상으로 회귀하는 과정에서의 익숙함과 생경함의 전이를 제3의 지점으로 짐작해본다. 김하은은 죽음으로 향하는 삶의 이중성이라는 부조리에서 내면을 서서히 잠식해오는 깊은 불안의 감정을 내면의 바다에 담고 있다. 이런 일련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김재영에게 오랜 시간 품어오며 곱씹음과 왜곡으로 파악이 불가능할 정도로 검게 변한 내면의 상태로,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제3의 장소가 된다.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공동체 예술활동 자체를 제3의 장소개념으로 보는 우채연은, 작품과 전시공간, 노동자로서의 작가 사이의 상호작용과 존재의미, 공간적 맥락에 따라 바뀌는 입지에 대한 고민을 풀어 낸다. 이와 연관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박서빈은 아이디어와 오브제, 테크닉 등 제작 행위와 요건을 해체하고 위계적인 요소를 배제한 예술실천을 일종의 중간자적 시점인 제3의 장소로 본다. 김지나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마다 이름을 부여하고 카테고리 안에 분류하며, 일종의 ‘감정적 소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습성에 주목한다. 이름을 짓거나 정의를 내려 주관적인 관계형성을 시도하는 인간의 욕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제3의 장소를 중립적이고 커뮤니티 구성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으로 ‘규정’ 지으려는 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작가는 역설한다. 반면 배승주는 익명성에 가려져 과감하게 휘갈겨진 낙서와 태그, 터부시 된 나체와 성적 표현이 친밀하면서도 자극적인, 때로는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자유로운 공론의 장처럼 제3의 장소를 상상한다.
재불청년작가협회 AJAC
1983년 창설된 재불청년작가협회 AJAC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국 청년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매년 정회원 작가들을 중심으로 문화원에서 열리는 정기전과 프랑스 또는 해외에서 개최하는 다양한 전시를 통해 회원 작가와 세계 각지에서 온 예술가들 간의 정보 공유와 나눔, 교류를 지향하고 있다.
참여 작가:
배승주, 박현, 최형섭, 드미래, 김수경, 하유미, 홍보라, 홍성연, 김하은, 김재영, 김지나, 권혁이, 이혜원, 이마레, 이승환, 이송희, 임효진, 박혜정, 박서빈, 신민서, 손지영, 우채연, 윤미지, 지온
한국문화원/ 전시실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