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한국 대법원 판결은 과연 ‘국제법 위반’인가 (남기정 교수)

남기정(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부교수)

일본의 한국에 대한 화이트국가 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명단) 제외 조치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28일 0시를 기해 결국 실행됐다. 이번 조치에 대한 일본의 공식 설명은 안보상의 신뢰를 이유로 무역관리체제를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지난 해 10월 30일 강제동원 피해와 관련된 대법원 판결이 일본의 행동에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일본 정부는 이 판결이 1965년 체결된 청구권 협정 2조 위반이라며 여러 경로로 한국 정부의 대응을 요구했고, 동 협정 3조에 따른 외교 협의와 중재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하여 이를 거부해 왔고, 피해자측은 일본의 가해 기업을 상대로 재산 압류와 현금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해 포괄허가에서 개별적 허가로 바뀌게 되면서 걸리는 시간이 대략 90일이다. 압류 재산의 현금화에 걸리는 시간이 또한 그 정도로 예상된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일본의 조치가 이 시점을 노린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명백하다. 일본은 이번 수출제한조치가 안 그래도 WTO 위반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에 대한 정치적 연관성을 애써 부정하고 있지만, 결국 속내는 우리 대법원 판결의 무력화에 있다.

일본이 제기하는 논지는 ‘국제법 위반’이다. 일본은 지난 해 10월 30일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마자 외무대신 담화를 발표해서 “한국이 대법원 판결로 국제법 위반 상태에 있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청구권협정에서 일본이 한국에 대해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등 5억 달러의 자금협력을 약속함(1조)과 함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으며,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다(2조)고 되어 있는데, 한국 대법원이 손해배상의 지불을 명령한 것은 청구권 협정 2조에 위반된다는 것으로, 한국이 국제법 위반 상태에 있는 것을 시정하고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논리는 몇 가지 측면에서 전혀 타당한지 않다. 먼저, 한국의 대법원 판결은 강제동원에 대한 손해배상의 지불을 명하고 있는 것이라, 배상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청구권협정은 재산상 민사상의 권리 의무 관계를 정치적으로 해결한 것에 불과하여, 불법적 식민지 지배 하에서 입은 기본적 인권 침해에 대한 배상 문제는 협정과 무관한 문제이다. 더구나 담화에서 일본 스스로도 지적하고 있듯이, 일본이 한국에 약속한 것은 자금협력인 바 그 법적 성격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또한 자금협력을 약속했다는 사실과 청구권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의 관계도 애매하다. 이는 한국의 대법원이 이미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문제이다.

둘째, 일본이 만일 한국 대법원이 명한 배상 청구가 청구권협정 2조 위반이라 주장한다면, 배상 문제가 제2조에서 해결되었다고 규정한 문제들에 포함된 것인지 밝혀야 한다. 만일 청구권협정을 통해 배상 문제를 해결했다면, 배상의 전제가 되는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것인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일본이 배상을 지불한 것으로 청구권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면, 종래 청구권협정 1조와 2조의 관계에 대해 ‘법률적 상관성’이 없다고 했던 종래의 해석을 변경하고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셋째, 이와 같이 성문법으로서의 조약의 문제, 즉 문구 해석의 문제와 별도로 관습법으로서의 조약으로서 갖는 1965년 협정의 문제가 존재한다. 즉 19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은 한일 양국이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이에 대해 양해한 가운데 성립해서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즉 한국은 한일기본조약에 의거해서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었다고 해석하고 있으며 일본은 이를 부정해 왔다. 또 한국은 청구권협정의 1조가 2조의 목적론적 계기가 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본 반면, 일본은 두 조항이 서로 무관한 것으로 해석해 왔다.

따라서 백보 양보해서 이번 대법원 판결이 일본의 조약 및 협정 해석에 위반해서 한국의 해석에 일방적으로 따르고 있다는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는 서로 ‘합의하지 않음에 합의(agree to disagree)’해 온 그 동안의 관례에 따라 용인되어야 할 사안이다. 결국 일본이 이를 ‘국제법 위반’으로 비난한다면 그 동안 ‘합의하지 않음에 합의’해 온 관례를 부정하는 격이 된다. 그렇다면, 한국을 ‘국제법 위반’이라 비난하는 일본이야 말로 ‘관습법으로서의 국제법’에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법리 다툼은 매우 복잡하여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1965년 체제의 기초를 이루는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에 대한 한일 양국의 해석의 불일치가 현 상황을 야기한 원인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1965년 조약과 협정에 대한 해석을 일치시켜, 한일 1965년 체제의 불완정성을 제거하는 해법이 있다. 1965년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한국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해 왔던 일본은 1990년대 들어 1993년 고노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 1998년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공동선언 등을 통해 한국 측의 인식에 조금씩 근접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2010년 간 나오토 담화에서 일본은 식민지 지배가 ‘한국인의 의사에 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일방적 담화로 나온 것이다. 이제 이를 한일 공동의 문서에 담아 공유할 일이 남았다.

결국 이번 사태는 1965년 체제로 봉인해 두었던 한일간의 본질적인 문제가 대법원 판결로 터져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의 한일관계는 이처럼 봉인 해제된 1965년 체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있다. 역사와 법리에 바탕을 둔 양국의 슬기로운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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