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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교류 협력


남북교류 및 협력

1990년 9월 남북한은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서울에서 시작해, 1992년 10월까지 모두 8차례 회담을 했다. 이 과정에서 1991년 12월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서로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 무력침략을 포기하며, 각 분야에서 교류 · 협력과 자유로운 인적 왕래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경제난이 심화 되면서 한국 정부는 대북지원을 꾸준히 계속했다. 1999년 비료 15만 5,000톤을 전달한 이후 해마다 20 30만톤씩 지원함으로써 2007년까지 지원 규모가 모두 255만 5,000톤에 달했다. 북한의 식량난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영농체계의 비효율성, 비료와 농약 부족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비료 지원은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을 돕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간 대화와 교류협력이 획기적으로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 강경 도발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악화되어 한국은 식량 및 비료지원을 잠정 중단했다. 다만, 어린이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나 재해에 따른 긴급구호는 계속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한반도에는 분단 때문에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이 살고 있다고 추산된다. 남북한 적십자사의 이산가족 상봉에 관한 회담이 1971년 8월에 열렸으나 논란을 거듭하다가 결국 중단됐다. 남북한은 1980년대에 회담을 재개해 이산가족 고향방문에 대한 합의를 이뤘고, 1985년 9월 20일부터 나흘간 역사적인 상호방문을 성사시켰다. 방문 인원은 남측 35명, 북측 30명씩에 그쳤으나, 이는 분단 40년 만에 성사된 중요한 행사였다. 이때 양측 예술단 교환 공연도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본격화한 시기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후다. 2000년 8월 상봉이 재개되어 2010년 10월까지 모두 18차례 진행됐다. 금강산에는 이들의 상봉 행사를 위한 이산가족 면회소가 설치되기도 했다. 이와는 별도로 2005년 8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모니터를 통한 화상 상봉도 7차례나 실시됐다.


개성공단

개성공단 사업은 한국의 민간기업이 북한의 토지를 50년간 임차해 공장을 건설하고 국내외 기업에 분양해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평양, 남포와 함께 북한의 3대 도시로 꼽히는 개성은 대한민국과 거리가 가깝다는 이점이 있다. 판문점에서 개성까지는 8km밖에 안 된다. 2000년부터 추진된 이 사업은 2002년 11월 북한 당국이 개성공업지구법을 발표함으로써 정식으로 시작됐다. 착공식은 2003년 6월 남북의 정치·경제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개성공단에는 현재 120여 개 대한민국 제조업체 및 협력업체들이 입주해 있다. 개성공단에는 북한 근로자 5만여 명이 고용되어 있으며,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노동력이 합쳐진 제품이 생산되기 시작한 시기는 2004년 12월이다.

남북한 사이에는 개성공단 운영과 관련해 통신·통관·검역, 출입 및 체류합의서 외에 개성공단의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 등 4개의 합의서가 발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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