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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진, 허우중 전시 < 트라보 퓌블릭 (Travaux Publics) >

2016년 12월 3일부터 2016년 12월 14일까지

11h00 - 19h00

Galerie du Crous de Paris
11, rue des Beaux-ars
75006 Paris



2017년 1월 3일부터 1월 14일까지 / Galerie du Crous de Paris


<트라보 퓌블릭>이라는 표제를 가진 이번 기획전은 public에 대한 두 작가 김여진, 허우중의 비판적 고찰의 반영이다. 개인의 일상과 개별적 특성에서 출발해 사회로 확장되면서 개성이 사라지며 특성없는 인간, 변화없는 반복만이 가득한 무채색의 일상만이 잔존하는 현상을 표현한 유이치 요코야마의 <트라보 퓌블릭>의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각자의 해석으로 방법론을 채택한다. 우선, 허우중은 순환과 변주를 통해 객체화, 보편화가 강제하는 대상의 사물화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콜라주를 통해 자신의 관찰에서 발견한 이미지들을 접합시키는데, 이 때 조각들의 조합과 병렬, 이질적 배치 등을 통해 이미지의 확장과 전개를 통해 통념의 환기를 시도한다. 또한 그는 작가 자신의 모습처럼 보이는 일반화되지 않는 어떤 개인의 환원불가능한 경험을 공간에 대한 표상으로 드러낸다. 예를 들어, 그의 작품 에서 볼 수 있듯이 불확실성과 막다른 길을 통해 벗어날 수 없으면서도 끝없는 불안을 내포한 미로라는 세계에서 닫힌 세계의 연쇄를 통해, 작가가 세계를 이해하는 거시적 시선과 미시적 시선을 중첩시키고 있다. 의 경우, 작가는 활시위를 당긴다. 활은 붓이다. 그 붓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액자 속 재현세계인가 회화의 대상인 실재세계, 곧 숲인가. 이미지들로 점철되어 이미지들만 남은 의미세계에서 작가 또는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는 실재와 관념 사이 어디를 겨냥하고 있으며, 그 지각의 경험은 곧 기억이 되어 고유한 ‘나’를 만드는 감각에 의문을 던진다.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액자 안의 세계를 포함하는 또 다른 세계 이미지는 망원경이나 현미경의 렌즈처럼 우리가 대상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거리를 축소해 부각시킨다. 이런 효과는 작가가 작품 안에 주석과 같이 시선의 극적 전환의 계기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에서 몰개성의 집적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발견한다. 크고 작은 목소리들은 색채없는 비어있음이지만, 이것들은 특성없는 거대한 하나를 이룬다. 결 없는 거대한 말. 우리는 여론에 기대거나, 그 백색의 그림자, 환영을 우리 자신의 언어인양 여기진 않는가.

<트라보 퓌블릭>은 물리적, 의미적 커뮤니케이션이 작동할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공공성을 확장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김여진은 일상적 공간에서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의 무감각에 대한 반성의 결과물을 설치를 통해 드러낸다. 이 무감각의 해소를 위한 시도는 더이상 개인의 체험이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획일적 건축물의 반복, 단조로운 환경의 반복에 어떤 특이점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형적 도시의 반복에서 감각은 무뎌지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사유의 계기는 정보의 과잉과 접근용이함을 통해, 유행과 여론에 민감해져 스스로 발견하기 어려워진다. 사회의 이러한 물질적 조건은 한 개인이 자신의 고유한 삶을 마주하면서 자신만의 의견을 소통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다기보다 오히려 단순화되고 일반화된 우리의 견해, 누구도 주인이 아니면서 반성조차 하지 않는 생각들을 확산, 재생산하는 조건처럼 보인다. 그는 이러한 지점에 대한 반성으로 도시 안에서 분수의 배치에 주목한다. 특색없는 건물들이 병렬되어 있는 공간의 한 중심에 분수가 놓인다. 인공적으로 물의 활기를 단조로운 공간에 부여해 우리를 자극한다. 하지만 과연 그 공간에서 우리 각자의 의미와 경험이 생산될 수 있는가? 다수의 주체가 한데 엉켜 고정되지 않은 어떤 유동의 상태, 불확정의 상태를 가리키는 대중문화와 그러한 대중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우리는 과연 고유한 마음으로 삶을 경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지각은 하나의 인과관계를 갖지 않는다. 기억은 불현듯 떠오르며, 감각은 반복되지 않으며 의미와 해석은 고정되지 않은 채, 우리는 살아간다. 과도한 양의 정보 안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가? 에서 김여진이 보여주듯,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에 반사된 대상을 발견할 뿐이지만 이 역시 단조로운 일상에 물의 활기를 부여하려는 불투명한 어항에 갖힌 모습이다. 질 들뢰즈가 말했듯이 반복은 언제나 차이들의 반복이기에 결국 우리는 이 불명확한 반복에서 되돌아오는 것을 발견해야만 할지 모른다.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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